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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링 육교를 지나 신세계로

아메리카 대륙은 호모 사피엔스가 정착한 마지막 대륙이었다. 이주 시기를 놓고 여러 의견이 있지만 현재 연구 상태로 봤을 때 약 1만 5000년 전, 즉 북아메리카에서 위스콘신 빙하기로 불리는 마지막 빙하기 말엽으로 잡으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동북아시아에서 알래스카와 캐나다 서북부에 이르는 이주 경로를 따라 이동했는데, 이때 지나간 곳이 베링 육교다. 베링 육교는 동북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잇는 육지 다리를 말하며(베링 육교설) 오늘날 베링해 북쪽 외곽에 위치했었다.

 

당시 상당량의 물이 극지방에서 빙하로 얼어붙었기 때문에 해수면은 약 125미터 하강해 있었고, 이 육교로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의 사하 공화국 레나강에서 캐나다의 매켄지, 그리고 북극해 일부분까지가 육지로 연결되었고 유사한 자연 조건을 가진 하나의 거대한 자연 공간이 생겨났다. 1만2000년 전에서 1만1000년 전 시기, 마지막 빙기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지만 아직 극지방에는 많은 물이 얼어붙은 채로 있었다. 

 

때문에 베링 육교와 동서 인근 지역은 물에 잠기지 않은 채 비옥한 초원 지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매머드, 털코뿔소, 순록, 사향소와 같은 다수의 대형 동물이 서식했고 이 지역의 특수한 점들 때문에 매머드 스텝이라 불렸다. 주로 대형 포유류를 사냥해서 먹고 살았던 현생인류는 최소한 이 시점에 큰 무리의 대형 야생동물 뒤를 쫓아 집단을 이뤄 신세계로 이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의 흔적을 추정해보면 마지막 빙기, 좀더 구체적으로는 아무리 늦어도 1만5000년 전에,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전에, 베링 육교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인구가 있었다.
알래스카는 플라이스토세 말엽에 이미 얼음이 많이 녹아 있었지만, 로렌타이드 빙상과 코스트마운틴스 빙하는 계속 얼어붙어 있어 초기 인류가 남쪽으로 이동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약 1만1500년 전에야 오늘날 유콘 지역에 빙하가 없어지면서 남쪽으로 계속 나갈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하지만 이 추측이 맞는다 해도 호모 사피엔스가 남아메리카에 닿았던 길은 북에서 내려오는 이 경로 외에 다른 경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남미 대륙에는 최소 1만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적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 시기는 북쪽 통로가 열렸던 때보다 확실히 더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일명 해안 이론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초기 인류는 1만5000년에서 1만2000년 전에 최초의 수상 운송 수단을 이용, 일본과 동시베리아의 해안을 따라 이동해 먼저 북아메리카에 닿았고 얼마 후 남아메리카에 이르렀으며 마지막으로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에까지 다다랐다. 또 지질학적 연구는 태평양 해안선을 따라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2만3000년 전까지 존재했고 이후 불가능하게 되었다가 지금으로부터 1만5000년 전부터 다시 가능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중단되었던 수천 년 동안 해안은 얼음에 덮여 있었다. 해안 이동 경로는 생각해봄 직한 것이지만 증명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해안을 따라 있는 이 시기 유적지들이 (실제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플라이스토세가 끝나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현재 기준으로 120미터 수심의 바다에 잠겨버렸기 때문이다.


이 두 이론은 모순됨 없이 양립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두 이론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 가장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즉 호모 사피엔스는 마지막 빙기, 최소한 1만5000년 전에 해안선을 따라 북아메리카에 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1만1000년 전 빙기가 종결되면서 베링 육교에는 얼음이 사라졌고 대형 야생동물이 많이 서식하는 비옥한 초원 지대가 생겨났다. 

 

초기 인류는 이 육교를 넘어 대거 신세계로 유입해 들어왔다. 이들이 남아메리카 최남단의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 전체 대륙으로 확산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확실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쉽지 않다. 이 거대한 영토 내에 해당 유적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많은 지역에서 새로 발견된 유적지는 특히 이 유적지가 매우 이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에는, 지금까지의 인구 확산 이론을 재고 하게끔 만든다. 이에 대해 우리가 정말 신빙성 있는 추론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증거 자료를 충분히 확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3만5000년 전에서 심지어 4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른 시기에 아메리카 대륙에 존재했었다는 증거 중 실제로 신빙성을 갖고 학계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없다. 물론 미래에 이런 증거물이 또 다른 발견을 통해 사실로 입증될 수 있고, 그러면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인류
이주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럴 계기가 될 만 한 발견은 없었다.


고유전자 연구가 보여주는 결과에 따르면, 미국 최초의 개척자들은 동일한 인구 집단에 속했으며 외부와 별로 접촉하지 않고 고립되어 발전했다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는 듯하다. 또한 1만5000년 전부터 있었던 동북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인구 이동은 여러 시기에 걸쳐 진행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DNA 연구는 더욱 큰의미를 가지며 중요한 단서도 많이 제공한다. 이 방법은 고고학 지식만으로는 할 수 없는 통찰을 제공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되어야 할 점은 이런 연구 방법이 시작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폭넓은 데이터베이스가 결여되어 있곤 하다. 또한 실제로 이 방법이 사용되었을 때, 그 신빙성은 해당 전문 인력만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